독서치료

[스크랩] 정신질환의 메커니즘과 독서치료/이영식

shali 2006. 9. 20. 22:16
정신질환의 메커니즘과 독서치료/이영식


이규환 선생의 <그래서 나는 오늘 정신과로 간다>(그린비/1997)를 읽으면서 정신질환의 매커니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둡니다. 독서치료를 비롯한 모든 상담은 인간이해가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인간을 공부하는 데 열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리된 생각을 여기에 나누고자 합니다.


    I. 정신질환의 개념에 대한 이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 즉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개인은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지만, 최소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탈자가 된다. 비정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바로이 사회적 일탈자라고 불리는 그룹이다. 이렇게 사회적 기준에서 일탈한 사람을 우리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서 정신과 치료가 시작된다."(16쪽)

어떤 사람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정상과 비정상적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관습이나 질서, 문화에 맞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 범주 안에서 잘 유지하면 정상적이라고 인정을 받지만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대인관계에서 부적절하게 반응한다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선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좋은 질문이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본래 사회학적인 통계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기 위해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선을 설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경우도 항상 있게 마련이며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없기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속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

상담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실수가 심리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교실안에서 매우 장난이 심하여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를 주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이 아이를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정신질환 충족요건은 크게 두가지로 소개된다.

1) 주관적 고통: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느낀다. 이 경우에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비슷한 정도의 어려움이라도 어떤 사람은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수능시험 1교시를 망쳤다고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도 있지만 모든 시험을 망쳐도 훌훌털고 웃을 수 있는 아이도 있다. 문제는 주관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2) 일반적인 사회생활 기능장애: 일상생활에서 정신질환자는 사회 질서에 잘 적응 하지 못하고, 자신이 해야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록  주관적인 고통이 커도 사회생활을 그런대로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아직 문제가 그다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반면 주관적인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는데(자각증세가 적음)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정신분열과 같은 증상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에 더하여 반사회성을 비롯하여 사회에 부정응 척도를 고려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신나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면, 그리고 자신의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이또한 문제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판정을 받지는 않지만 예방적이고 발달적 차원에서 정신과적으로 다루어지는 부적응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소개하는 다음과 경우가 해당된다.

1) 성인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의 반사회적 행동

2) 소아나 청소년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의 반사회적인 행동

3) 임상적으로 볼 때 지능지체는 아니지만 지능이 낮아 사회 적응이 힘든 경우

4) 노화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지적 기능의 쇠퇴로 인한 문제

5)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나타나는 정상적인 사별 반응

6) 정신질환에 관계없이 학교 성적이 떨어지거나 유급당한 경우

7) 인생 목표, 직업 선택, 인간관계 형성, 성적인 정체성 등에 혼란이 있는 경우

8) 신앙에 대한 회의, 새로운 신앙으로의 전환

9) 이민 등 문화의 차이에 적응하기 힘든 어려움

10) 입학, 직업 선택, 결혼, 이혼, 정년 퇴직 등으로 인한 갈등

이상과 같이 대인관계의 변화, 새로운 사회적 문화 환경,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따른 적응의 문제 등을 예방적이고 발달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은 질병, 천재지변, 가족의 죽음, 사고와 같은 우발적인 위기와 정상적인 발달과정에서 겪는 발달위기를 잘 극복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인간의 정신질환이란 자신, 환경, 대인, 사회 등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이며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기준은 1) 주관적 고통, 2) 사회적 기능, 3) 사회적 적응이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에는 어떤 종류와 증상이 있을까? 또 그것을 진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설명해 간다.

나는 상담을 오랫동안 연구하는 학도로서 상담이란 곧 인간이해에 다름 아닌 것을 갈 수록 절감한다. 인간을 이해하는 만큼 깊이 있는 도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상담의 전략과 기법이 개발되는 점도 있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난 이래 가장 큰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상담을 하는 사람은 정신과적 관점(이상심리)과 발달적 관점, 그리고 우발적 위기(사회적응)이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균형 있게 내담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학문적인 책과 대중적인 책의 중간쯤 되는 서술 방식으로 정신과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II. 정신질환의 심리적 매커니즘
 
 정신질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고통은 '슬픔'과 '기쁨'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이 양극단적인 감정들이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데 있다. 극도의 슬픔도 당사자에게 괴로움을 안겨 주지만 극도로 비정상적인 '기쁨'도 괴로움을 안겨준다. 정서장애 (情緖障碍 affective disorder) 가운데 "양극성 우울장애"라는 것이 있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우울증이란 지나치게 침체하여 무력해 지는 것이며 조증은 지나치게 자신감과 활기에 넘쳐서 공중에 붕 뜬 것 처럼 느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슬픔의 감정도, 기쁨의 감정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면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양극단을 피할 수 있어 가장 좋은 선택일까? 물론 아니다.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로서 슬플 때 적절한 슬픔을 느끼고 기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감정둔마 (感情鈍痲 dullness of emotion)라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있어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서 둔마는  전반적으로 지둔(遲鈍)하게 되는 것과 어떤 종류의 감정만이 둔해지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인 경우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고 그날그날을 그저 멍하게 지나는 것이 특징이다. 후자의 경우는 특정 상황에서 당연히 느껴야할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정신질환의 증상을 구별하고 진단하는 표준은 영어사전 두께만큼이나 방대하고 다양하다. 인간은 그만큼 병을 앓는데도 창의적이라고 할까? 그러나 질병의 원인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몸은 지닌 존재기에 유적적, 생리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과 같은 주 생활 무대에서의 대인관계가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 심리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저자는 정신질환의 주된 요인으로 환경에 대한 부적응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집적 들어보자.

"정신질환자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몰두한다고 해도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에 제대로 부합하고 효율적인 결과를 생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현실적인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설사 객관성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더라도 자신이 느끼는 불안정함과 고통 때문에 주위로부터 고립된다. 따라서 이들은 흔히 자신의 부적응과 심정 고통을 감추기 위해 현실을 왜곡시켜 해석한다."(18-19쪽)

정신질환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사회에 부적응"의 문제와 이로 인한 불안, 괴로움이다. 이처럼 어떤 개인이나 체계를 심하게 억압하거나 압력을 가해 그 대상을 붕괴시킬 수있는 위협을 총칭하여 트레스라고 부른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갈등이나 고통을 주고, 심하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기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수단을 동원하여 정신적, 신체적,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고 공포, 불편담, 긴장, 짜증,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고, 신체적으로는 가슴이 뛰고, 소화가 안되고,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혈압이 오르며, 소변이 자주 마렵고, 입이 마르는 등의 반응이 일어난다.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이런 반응들이 습관화 되어 만성적인 불편을 겪게된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유기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신질환 역시 그것이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혹은 둘 다이든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적 갈등을 부적절한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표출하는 것이 증상이라고 보았다. 이런 심리적 에너지는 몸의 생리적 에너지와 쉽게 전환되는 속성이 있어서 신경증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정신질환은 "정신을 왜곡 시켜 자신을 지켜내는 생존 전략"이다. 즉 생각을 왜곡 시켜 망상으로, 행동을 왜곡시켜 기이한 행동으로, 감각을 왜곡하여 환각으로, 감정을 왜곡하여 부적절한 감정상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감각은 다시 환청, 환시, 환촉, 환미, 환향 등 오감의 왜곡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 가운데 몇 가지가 겹칠 수도 있다. 증상은 그것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지만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 데, 중증일 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신경증은 그래도 자신이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자각이 있는 경우이지만 정신불열의 경우는 전혀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신경증의 경우는 지나치게 현실을 의식한 나머지 감정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고 정신불열의 경우 현실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약해져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항상 양극단이 문제인 것이다.

이제 정신질환의 매커니즘을 요약해 보자.

사회적 부정응-->스트레스-->부적절한 생존전략 구사-->정신질환 유발-->증상(주관적 고통, 기능저하, 사회적 부정응)

그렇다면 치료의 매커니즘은 이 사이클을 반대로 돌리면 되지 않을까?

증상의 의미 해석 -->부적절한 방어기제 대신 적절한 생존전략 채택-->스트레스 극복-->효과적인 적응(정상적인 희노애락, 행동, 정서, 생각회복/ 정상적인 생활기능/사회적응)



      III 독서치료적 적용

이상의 고찰을 독서치료에 적용해보자. 먼저 문학작품을 통해서 부적절한 방어기제와 그 파괴적인 결과를 관찰 할 수 있다. 즉 부적절한 방어기제의 선택과 그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긍정적인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채택하여 사용하는지, 그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는 어떤 것인지 모델 학습을 할 수 있다.

부정적인 방어 기제는 한 두 번의 상담으로 잘 발견되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 역시 나름대로 개발해온 생존전략이기 때문에 확실한 대안이 없다면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림책과 같은 짧은 이야기이면서 쉽게, 여러차례에 걸쳐서 반응 할 수 있는 매체는 자신의 부정적인 방어기제를 발견하는데 용이하다. 즉 특정 인물이나 사건, 상징에 대하여 자신이 어떻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지 관찰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

무의식적 차원의 부정적인 방어기제를 전이 분석을 통해서 발견했다 하더라도 대안적인 긍정적 방어기제를 채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유머나 승화, 인내(포용)과 같은 긍정적인 방어기제를 배워볼 기회가 적은 내담자인 경우 더욱 그렇다. 이 때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건강한 모델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전이를 분석하여 자신을 통찰하는 것과 대안적 방어기제를 개발하는데 모두 쓰일 수 있는 기법은 서사학의 시점바꾸기이다. 즉 타인에 대한 묘사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자신의 모습"을 글로 써 보는 것이며 시점을 바꾼 대화의 기술은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고 글로 표현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영화나 문학작품을 보고 등장인물들에 대하여 토론하는 가운데 동일시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둔마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현실감각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와 같은 작업은 현실감각이 떨어진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현실감을 길러주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훨씬 진솔한 태도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문자로 기록된 것은 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다. 말은 앞뒤가 안맞아도 슬쩍 넘어갈 수 있지만 글은 전후 문맥을 반복적으로 음미하면서 모순된 점을 짚어 낼 수 있다.

작가는 정신질환의 매커니즘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작품 속에 두 가지 대립적인 모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좋을 것이다. 즉 부정적인 자기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고 심리적으로도 병들어가는 선택을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과 이 악순환을 끊고 회복되는 모델의 대립이다. 문제만 제기하는 문학은 많은 것 같은데 그 문제를 건강하게 극복하는 모델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다. 최근에 크게 흥행했던 영화 <왕의 남자>에게서 느끼는 소감이기도 하다. 광대패가 라이브로 공연하는 광대극은 왕과 신하들의 거울역할은 훌륭하게 해 내지만 긍정적이고 창의적을 과거지사를 해결하는 대안 제시는 없다. 그런 면에서 광대극은 비극적인 결말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역기능한다.  앞으로 독서치료를 염두에 둔 문학 작품들은 건강한 대안이 제시된 모델들이 많이 쓰여지기를 소망해 본다.


2006년 6월 9일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출처 : 코요콤
글쓴이 : shal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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