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교육의 춘추전국시대, 논술교육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이정옥
2007학년도 입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논술에 대한 관심이 잠시 주춤해지나 싶더니 최근 들어 또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대와 연대, 한양대 등이 서둘러 2008 학년도 논술 모의고사를 실행함에 따라 논술을 지도하고 있는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물론 사교육 시장의 논술 분석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대학이 입시 전형을 발표할 때마다 수험생을 지도하는 관련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입시를 전담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대학에서 발표하는 논술의 향방에 따라 그들의 전략이 좌우되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고 있는 논술에 대한 관심은 예민한 반응 이상의 수준을 넘어 온 나라가 ‘논술 열병’을 앓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온 나라가 논술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증상은, 논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교육시장과 출판시장이 과열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논술을 준비하지 않으면 마치 대학 근처에도 갈 수 없는 것처럼 학부모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논술학원의 홍보물이 넘쳐나고, 논술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답시고 어린 학생들이 읽는 동화책마저도 온통 논술이란 포장을 덧씌워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논술의 기초를 쌓을 수 없을 것같은 불안감을 유발하는 광고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초등논술, 중등논술, 대입논술,독서논술, 매체논술, 수리논술, 과학논술, 역사논술 등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양산되고 그와 관련된 참고서가 쏟아지고 있어 논술의 개념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틈을 타고 사교육시장 일번지라는 대치동의 논술시장 규모가 2-3년 사이에 약 3배가량 커져 건물 하나 건너 논술학원이 난립하고 있다고 한다.
논술교육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대학에 있다
논술을 둘러싼 문제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사회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논술을 출제하고 관리하는 대학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논술 열풍은 1993년 기존의 논술방식을 지양하고 여러 교과를 통합하는 ‘통합교과형’ 논술로 바뀌었던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고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대학이 이른바 수리논술을 포함하는 ‘통합논술’ 방식으로 전면 교체하고 그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부터 과열되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 보면 ‘통합논술’이란 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수리논술, 과학논술, 역사논술 등 논술 영역이 세분화 되고, 이것을 통합하는 방식이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면서 논술교육의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이에 따라 혼란이 증폭되었다. 더욱이 ‘통합논술’에 앞장을 서왔다고 자부하던 고대가 통합논술의 변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논술 반영 비율을 줄이겠다고 공표하는 반면,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들은 2008 학년도부터 논술 비중을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논술교육의 향방과 관련하여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논술교육의 춘추전국시대에 군웅이 할거하고 있다
난세에는 군웅(群雄)이 할거하는 법이다. 또한 군웅들이 난세를 평정해보겠다고 저마다 해법을 내놓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욱더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법이다. 대학마다 논술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향이 이렇게 혼선을 빚고 있는 와중에, 논술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서서 자기 멋대로 문제를 진단하거나, 서로 다른 논술교육의 해법을 들고 나와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길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하여 논술교육은 더욱더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은 혼탁한 양상에 빠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고, 그 속에서 정작 학생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실정이다. 학벌을 중시하고 대학의 서열화가 분명한 우리 사회에서 메이저급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겠다는 사소한 발표마저도 초․중등교육의 교육 내용과 방법을 좌우할만큼 여파가 클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교육 목표와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십분 고려하여 대학은 논술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논술교육에 관한 각종 해법이 난무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논술을 출제하는 대학 입시 당국을 비롯하여 논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교사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역설적이게도 과연 논술교육의 바람직한 해법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선적으로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대학에서 논술시험을 도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시험을 도입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데 있다. 즉 제시문을 읽고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문제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논술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논술시험에서 요구하는 사고력이란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 사물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고, 표현력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글을 통해 남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논술시험에서는 주어진 제시문의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주어진 상황에 맞게 변형하고 융통성 있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아울러 그러한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여 갑작스럽게 주어진 새로운 문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학생을 선발하고자 한다.
논술교육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논술교육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올바른 해법이라고 제시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단지 논술문 작성의 테크닉을 가르치거나 아니면 제시문을 효율적으로 읽어내도록 지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사물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폭넓게 관심을 가지고 자기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묻고 대답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능력은 더더욱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테크닉이 아니다. 이러한 능력은 오랜 시간 꾸준하게 훈련하고 노력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논술교육의 올바른 해법은 무수한 공부의 과정과 고된 훈련의 과정을 참고 이겨내며 내공을 쌓도록 안내하는 원리와 방법에서 찾아야 한다.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야 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자신의 생각을 폭넓게 넓혀가야 한다. 독서는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다른 필자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글을 구성하는 방식과 표현 방법 등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또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생각을 깊고 넓게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피아노를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처럼 매일 조금씩 거듭거듭 피아노 치는 연습을 하듯 오랜 시간 동안 읽고 생각하고 쓰는 훈련과정이 요구된다. 기본에 충실한 학생이 변주에도 능한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읽고 생각하고 쓰는 훈련을 거듭하며 착실하게 내공을 쌓은 학생이라면 수리영역과 언어영역의 통합을 쉽게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사고를 자유롭게 펼치는 영역 전이적 접근도 손쉬울 것이다. 따라서 논술교육은 정확하게 책을 읽고 폭넓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독서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글쓰기의 기초부터 차근히 다지고 쓰는 훈련을 거듭하여 능숙하게 자신의 생각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해내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쓰기교육에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라톤 선수를 훈련시키는 트레이너와 같이 논술교육은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쓸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이끌어주는 지난한 작업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면 단시간 내에 논술을 정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해법에 현혹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해법의 정체가 논술교육의 고된 숙련과정을 달콤한 당의정으로 숨긴 채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하는 화려한 상술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 |